요약: 최애 배우 인터뷰까지 찾아 읽는 파라소셜 관계, 외로워서 생기는 걸까?
- 화면 속 인물에게 실제 관계 같은 친밀감을 느끼는 현상을 파라소셜 관계라고 부르며, 1956년에 처음 이름이 붙었습니다.
- 연구 120편을 합친 2020년 메타분석에서는 외로움 같은 사회적 결핍과 파라소셜 관계 사이에 뚜렷한 연관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 오히려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처럼 보통 인간관계를 만드는 요인과 더 강하게 묶여 있었습니다.
- 가까운 관계가 흔들린 직후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자존감 하락과 거절감이 덜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 건강한 몰입과 문제 몰입을 가르는 기준은 시간이나 열정의 크기가 아니라 일상 기능과 실제 관계가 버티고 있는지입니다.
새벽 한 시에 해외 매체 인터뷰 원문을 번역기에 돌려 가며 읽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볼게요. 한국 기사에는 안 실린 대목, 촬영장에서 누구랑 밥을 먹었는지, 요즘 읽는 책이 뭔지까지 챙깁니다. 다 읽고 나면 묘하게 그 배우를 조금 더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상대는 이쪽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이거 내가 외로워서 이러는 건가." 커뮤니티 인기글에도 비슷한 자조가 자주 올라오거든요. 연구자들도 이 질문을 수십 년째 붙들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나온 답은 그 자조보다 덜 우울합니다.
일방적인데 진짜처럼 느껴지는 관계 (파라소셜 관계)
이 현상에 처음 이름을 붙인 건 사회학자 도널드 호턴과 리처드 월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1956년 논문에서 TV와 라디오 진행자가 카메라를 보며 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에 주목했어요. 시청자는 그 말투와 표정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상대를 "아는 사람"처럼 느끼게 되는데, 정작 상대는 시청자를 모릅니다. 이들은 이걸 거리를 둔 친밀감이라고 표현했고, 파라소셜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연구자들은 시청하는 순간의 반응을 상호작용, 시청이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지속적인 유대감을 관계로 나눠 부르는 편이에요. 해외 인터뷰를 찾아 읽는 건 후자에 속합니다. 방송이 끝나도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이어지니까요.
중요한 건 호턴과 월이 이걸 병리로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주 보는 얼굴에 친숙함을 느끼고, 그 친숙함이 관계의 감각으로 번지는 건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봤죠. 70년이 지난 지금은 매체가 훨씬 촘촘해졌습니다. 인터뷰 영상, 비하인드, 라이브 방송, SNS 사진까지 매일 들어오니 "아는 사람 같은 느낌"이 쌓이는 속도도 빨라졌고요.
인터뷰를 읽을수록 가까워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
해외 인터뷰가 유독 끌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작품 속 모습은 배역이지만, 인터뷰는 그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하는 자리거든요. 어릴 때 살던 동네, 슬럼프였던 시기, 요즘 빠진 요리 같은 사소한 정보가 쌓이면 상대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제 인간관계에서도 서로를 조금씩 더 알게 될 때 가까워졌다고 느끼죠. 같은 일이 한쪽에서만 일어나는 거예요.
또 하나는 "나랑 비슷하다"는 발견이에요. 예를 들어 좋아하는 배우가 인터뷰에서 파티보다 혼자 책 읽는 게 좋다고 말했다고 해 볼게요. 비슷한 성향의 팬이라면 그 한 문장에 꽤 크게 반응합니다. 뒤에 나올 메타분석에서도 이렇게 "나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정도(지각된 유사성)가 파라소셜 관계와 강하게 묶인 요인 중 하나였어요.
국내 기사에 안 실린 원문을 찾아 읽는 행동에는 약간의 수고도 들어갑니다. 번역기를 돌리고, 맥락을 추측하고, 다른 인터뷰와 맞춰 보죠. 이렇게 들인 시간은 그 자체로 관계에 들인 공처럼 느껴져서 친밀감을 한 번 더 키웁니다. 관심 가는 대상 앞에서 누구나 하는 일이고요.
외로운 사람이 더 빠진다는 증거는 약합니다
"친구 없는 사람이 연예인한테 집착한다"는 말은 오래된 고정관념입니다. 초기 연구자들도 비슷한 가설을 세웠어요. 사회적 관계가 모자라면 그 빈자리를 매체 속 인물로 채운다는 보상 가설이었죠.
그런데 데이터는 이 가설을 잘 받쳐 주지 않았습니다. 1985년 루빈, 퍼스, 파월이 지역 뉴스 시청자를 조사했을 때, 외로움 점수로는 앵커와의 파라소셜 상호작용을 예측할 수 없었어요. 이후 연구들도 결과가 엇갈렸고요.
가장 큰 그림은 2020년 투카친스키, 월터, 소시어의 메타분석에서 나왔습니다. 40년 동안 나온 연구 120편을 합쳐 보니, 외로움 같은 사회적 결핍과 파라소셜 관계의 연결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나타나지 않았어요. 대신 "이 사람은 나랑 비슷하다"는 지각 같은, 실제 친구 관계를 만드는 요인과는 강하게 연결돼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사람은 외로워서가 아니라 사람을 좋아하는 방식 그대로 화면 속 인물도 좋아한다는 얘기예요.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메타분석에 들어간 연구 대부분이 한 시점에 설문으로 잰 상관 연구라, 인과를 말하긴 어렵습니다. 외로움이 큰 특정 시기, 예를 들어 이사 직후나 이별 직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고요. 그래도 "파라소셜 관계 = 외로움의 증거"라는 공식은 적어도 지금 쌓인 근거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이 거절감을 덜어 주기도 합니다
외로움의 원인은 아니어도, 외로울 때 쓰이는 건 맞습니다. 이 둘은 다른 이야기예요.
2009년 데릭, 가브리엘, 휴겐버그는 이걸 사회적 대리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네 차례 연구했습니다. 첫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외로울 때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찾고, 보는 동안엔 외로움이 덜하다고 답했어요. 세 번째 연구(116명)가 더 흥미롭습니다. 가까운 관계가 흔들리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 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생각하게 한 집단은 자존감과 기분이 덜 떨어졌고, 거절당한 느낌도 덜 올라왔습니다. 별로 안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떠올린 집단에서는 이런 완충이 없었고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기획안이 통째로 엎어진 날을 생각해 볼게요. 집에 와서 최애 배우의 옛날 인터뷰 영상을 틀어 놓으면 마음이 좀 가라앉습니다. 도피라기보다 소속감을 잠깐 빌려 오는 쪽에 가깝죠. 실험 결과만 놓고 보면 꽤 쓸모 있는 기능입니다.
다만 이 연구도 대학생 표본의 단기 실험이라, 몇 년에 걸친 효과까지 말해 주진 않습니다. 빌려 온 소속감이 실제 관계를 대신하게 되면 어떤지는 또 다른 질문이죠.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이유에서 다뤘듯, 혼자가 편한 것과 연결이 필요 없는 건 같은 말이 아니거든요.
최애의 활동 중단에 유독 흔들리는 사람 (애착 성향)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조너선 코언은 2004년 이스라엘 성인 381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TV 캐릭터가 방영 종료로 사라진다면 어떨지 물었습니다. 응답자들은 실제 관계가 끝났을 때와 비슷한 상실 반응을 예상했어요. 그 강도는 캐릭터와의 유대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애착 성향에 따라 달랐습니다. 상대가 떠날까 봐 걱정이 많은 불안 애착 응답자들이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했죠. 상상 속 이별을 물은 연구라 실제 종영 뒤의 반응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뜻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실제 관계에서 연락이 늦으면 무너지는 사람은, 최애의 열애설이나 활동 중단 소식에도 비슷한 크기로 흔들릴 수 있다는 거죠. 파라소셜 관계가 문제라기보다, 관계를 대하는 평소 방식이 그대로 옮겨 오는 겁니다. 이 부분이 익숙하다면 불안형 애착: 연락이 늦을 때 무너지는 마음도 같이 읽어 볼 만합니다.
어디서부터 문제 몰입일까 (셀럽 숭배 척도)
좋아하는 마음이 전부 괜찮다는 건 아닙니다. 연구자들도 선을 그어 보려 했어요.
2002년 매커천, 랭, 휴런은 셀럽 숭배 척도를 만들면서 응답이 점점 강해지는 세 층위로 나뉜다고 정리했습니다.
- 오락·사교 수준: "최애 얘기를 친구들과 나누는 게 즐겁다" 같은 문항. 같이 떠들고 즐기는 영역입니다.
- 강렬한 개인적 수준: "그 사람이 내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한다"처럼 강박적인 감정이 섞이기 시작합니다.
- 경계선 병리적 수준: 상대를 위해 불법적인 일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문항. 비현실적 믿음이 끼어듭니다.
이듬해 몰트비 등은 첫 층위가 외향성과, 둘째가 신경증 경향과, 셋째가 정신병적 경향(아이젱크의 성격 차원)과 각각 연결된다고 보고했어요. 아래층은 사교성 쪽이고, 위로 갈수록 정서 불안정과 충동성 쪽에 가까워진다는 얘기죠. 다만 이 척도는 해석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름부터 "숭배"라 문항이 부정적 방향으로 짜여 있고, 층위 사이 경계도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옵니다. 자기 점수로 스스로를 판정하는 용도로 쓰기엔 무리가 있어요.
그래서 실용적인 기준은 다른 데서 찾는 게 낫습니다. 몰입이 문제인지 따질 때 정신건강 쪽에서 흔히 먼저 보는 건 생활 기능이에요. 잠, 일, 돈, 실제 사람과의 관계가 그 관심 때문에 계속 깎여 나가고 있는지요. 새벽까지 인터뷰를 읽어도 다음 날 출근해서 일이 굴러간다면 그건 취미의 범위입니다. 반대로 한 달 생활비가 굿즈로 빠지고, 친구 약속을 계속 미루고, 최애 소식에 하루 기분이 통째로 좌우된다면 점검할 때가 된 거죠.
스스로 점검해 볼 다섯 가지
아래 질문에 "예"가 두세 개 이상이면 속도를 조금 늦춰 볼 만합니다.
- 최근 한 달, 최애 관련 콘텐츠 때문에 잠을 계속 줄였나요?
- 굿즈나 유료 콘텐츠 지출이 계획한 예산을 자주 넘기나요?
-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사람과의 약속보다 새 콘텐츠 확인이 먼저인 날이 많나요?
- 최애에 대한 부정적 기사 하나에 하루 전체가 무너지나요?
- 그 사람이 내 존재를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다고 느끼나요?
마지막 질문이 특히 중요합니다. 호턴과 월이 말한 거리를 둔 친밀감에서 "거리" 쪽이 흐려지는 신호거든요. 나머지 넷은 조절로 풀리는 경우가 많지만, 다섯 번째가 강하게 "예"라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주변에 이야기해 보는 게 좋습니다.
실천 팁도 거창할 필요 없어요. 1번이 걸린다면 긴 인터뷰는 자기 전이 아니라 주말 오전으로 옮겨 보세요. 새벽 한 시에 읽던 걸 토요일 열 시에 읽어도 내용은 똑같습니다. 알림이 문제라면 전부 켜 두는 대신 확인 시간을 정해 몰아서 보는 쪽이 낫습니다. 새 소식마다 반응하지 않아도 되면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하루가 덜 쪼개지거든요.
2번이 걸린다면 굿즈 예산을 월 단위로 정하고, 넘기면 다음 달로 미룬다는 규칙 하나만 두세요. 규칙이 여러 개면 오래 못 갑니다. 흔한 함정은 "이번 한정판만 예외"예요. 한정판은 매달 나옵니다.
같은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과 감상을 나누는 것도 방법입니다. 혼자 읽던 인터뷰가 실제 대화 소재가 되면, 앞에서 본 오락·사교 수준에 머물기 쉬워지니까요.
내가 관계에서 뭘 채우고 싶은지 보기
최애에게 끌리는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배우의 솔직한 말투에서 "이해받는 느낌"을 얻고, 어떤 사람은 한결같은 태도에서 안정감을 얻어요. 둘 다 실제 관계에서도 원하는 것들이죠.
정서적 욕구 테스트는 관계에서 사랑받고, 안전하고,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신호가 어디에 있는지 짚어 보는 테스트예요. 결과는 진단이 아니라, 내가 화면 속 인물에게서 대신 채우고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재료 정도로 쓰면 됩니다.
이 글은 진단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대상과 상관없이 무기력, 불면, 사람을 피하는 상태가 2주 넘게 이어지거나 스스로를 해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세요. 자살예방상담전화 109는 24시간 연결됩니다.
해외 인터뷰까지 찾아 읽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연구가 보여 주는 건, 그게 외로움의 증거라기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평범한 방식에 가깝다는 쪽이에요. 확인해 볼 건 열정의 크기가 아니라 내 잠과 돈과 사람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정도입니다. 오늘 밤 읽을 인터뷰가 한 편 남아 있다면, 읽고 나서 불 끄고 자면 되고요.
참고한 자료
- Horton, D., & Wohl, R. R. (1956). Mass communication and para-social interaction: Observations on intimacy at a distance. Psychiatry, 19(3), 215–229. https://doi.org/10.1080/00332747.1956.11023049
- Rubin, A. M., Perse, E. M., & Powell, R. A. (1985). Loneliness, parasocial interaction, and local television news viewing.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12(2), 155–180. https://doi.org/10.1111/j.1468-2958.1985.tb00071.x
- Tukachinsky, R., Walter, N., & Saucier, C. J. (2020). Antecedents and effects of parasocial relationships: A meta-analysis. Journal of Communication, 70(6), 868–894. https://doi.org/10.1093/joc/jqaa034
- Derrick, J. L., Gabriel, S., & Hugenberg, K. (2009). Social surrogacy: How favored television programs provide the experience of belonging.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5(2), 352–362. https://doi.org/10.1016/j.jesp.2008.12.003
- Cohen, J. (2004). Parasocial break-up from favorite television characters: The role of attachment styles and relationship intensity.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21(2), 187–202. https://doi.org/10.1177/0265407504041374
- McCutcheon, L. E., Lange, R., & Houran, J. (2002). Conceptualization and measurement of celebrity worship. British Journal of Psychology, 93(1), 67–87. https://doi.org/10.1348/000712602162454
- Maltby, J., Houran, J., & McCutcheon, L. E. (2003). A clinical interpretation of attitudes and behaviors associated with celebrity worship. Journal of Nervous and Mental Disease, 191(1), 25–29. https://doi.org/10.1097/00005053-200301000-00005
